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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고향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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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안개나루
날짜 : 09-02-02 11:03
조회 : 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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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 안철수
하루종일, 아니 여러 계절을 불치의 관절 앓으며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구나. 실오라기 빛줄기로 목을 축이고 거미줄로 엮어 삼은 홑적삼 입고 너는 내게로 이어진 세월을 당기며 밤새 창을 열어 두었구나. 안개 뿜어내던 푸른 숲 모퉁이에는 아직 지워지지 않은 발자국들이 서성거리며 그대로 남아 있었구나. 그 발자국을 따라가면 내 기억들을 연주하던 고향집 울타리 나팔꽃들이 음표처럼 피어있을지도 몰라. 가난을 태워 올리던 굴뚝에서는 청솔 연기 털며 굴뚝새 포르릉 포르릉 날아오르고 투명한 개울 돌 틈, 소금쟁이 그림자에 놀라 갯버들 그늘로 뒷걸음치던 순하디 순한 가재는 여전히 각질의 견고한 앞다리 쩌억벌리며 악수를 청해올까. 해질녘이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쩡쩡울리던 정의의 주먹 태권동자 마루치와 아라치, 수 억만 리를 날아와 동네 꼬맹이들을 근두운에 태우고 꿈 길로 실어 나르던 손오공은 지금 어디서 깊은 잠에 취해있는지. 꼴망태 부려놓고 울타리 너머 길 밖으로 도망치던 날이었던가. 가슴을 내어주며 언제건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오라던 양철 대문, 대낮부터 벌겋게 취해 풀숲을 베고 누워있구나.
저물도록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를 기다리며 툇마루 섬돌에 새기던 푸르디푸른 꿈들 아직 늙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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